兪奉春
1896-04-12 ~ 미상·일제강점기
이명·자·호 兪鳳春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유봉춘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0년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 제1남지방부(南地方部) 주북지회(朱北支會) 모연원(捐募員)으로 군자금 모집과 밀정 처단에 참여하였다. 대한국민회는 1919년 중국 길림성(吉林省) 북간도(北間島) 지역에서 조직된 항일독립운동 단체로 북간도국민회(北間島國民會)로도 불린다. 북간도의 4개 현(縣)을 기반으로 하였으며,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던 각 촌락에 지회(支會)를 두었다. 회원은 약 8,000명이었으며, 1920년 초에는 지회의 수가 80여 개에 이르렀다. 이후 홍범도(洪範圖)의 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을 후원하였으며, 1920년 초에는 안무(安武)를 사령관으로 하여 직접 국민회군(國民會軍)을 조직하고 각 지회에 교관을 파견하여 독립군을 양성하였다. 유봉춘은 1920년 음력 7월 박준학(朴俊鶴)ㆍ최정수(崔正洙)ㆍ황운흥(黃雲興) 등과 함께 밀정 윤달수(尹達壽)를 화룡현(和龍縣) 사대사(四對社) 증봉동(甑峰洞) 부근 산곡(山谷)으로 연행하여 처단하였다. 같은 해 음력 8월 1일에는 함북 회령군 팔을면(八乙面) 창효동(彰孝洞) 김병린(金炳燐)의 집에 김병철(金炳喆) 외 18명을 모이게 한 후 2천 원의 군자금 모집을 약속받았으며, 2일 밤에도 팔을면에서 최태항(崔泰恒)ㆍ강기용(姜璣瑢)ㆍ최병연(崔秉淵)ㆍ윤영준(尹永俊) 등에게서 후일 군자금을 받기로 약속받는 등의 활동을 하다 1921년 4월 회령경찰서에 체포되었다. 1922년 4월 2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1919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 및 살인, 불법체포, 감금죄 등으로 무기징역을 받고 경성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31년 8월 18일 가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4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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