劉相奎
1897-11-10 ~ 1936-07-18·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유상규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평북 강계(江界) 사람이다. 1919년 11월 중국 상해(上海)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에서 국내에 있는 유력 재산가, 학교 및 종교계 등을 조사하여 독립운동의 자료로 삼기 위해 조직한 임정조사원의 평북 강계지역 책임자로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이듬해인 1920년 2월에는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이던 안창호(安昌浩)의 비서로 활약하였고, 동년 2월 22일 상해 프랑스 조계(租界)내에서 조직된 흥사단(興士團) 원동지부(遠東支部)에 가입하였고, 유기준(劉基俊)을 흥사단에 가입시키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1925년 12월부터 1931년 2월 22일에 이르는 기간 동안 안창호의 주창에 의해 조직된 수양동우회(修養同友會)에 가입하여 활동하였으며, 1931년 하게 수양대회를 개최할 때 김윤경(金允經)·김선량(金善亮) 등과 함께 동우회 강령의 선전방안과 장래를 위하여 청년들로 구성된 청년개척군(靑年開拓軍)의 조직을 협의하기도 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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