劉錫鉉
1900-05-14 ~ 미상·일제강점기
이명·자·호 金世震, 劉錦山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유석현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충북 충주(忠州) 사람이다. 1919년 3·1독립운동에 참가하여 활약 중 일경의 추적을 받아 같은 해 11월 만주로 건너갔다. 1920년 7월 중국 천진(天津)에서 의열단(義烈團)에 입단하여 1922년 2월 군자금 조달을 목적으로 입국하였다. 1922년 12월 김지섭(金祉燮)등과 함께 무교동 백윤화(白允和) 판사를 협박하여 군자금을 모금하려 하다가 실패하고 다시 중국으로 건너 가 1923년 5월을 기하여 전국 각지에서 대폭동을 일으키고 요인을 암살하라는 지령을 전달받았다. 그는 김시현(金始顯)·황 옥(黃玉)·김지섭(金祉燮) 등 동지를 규합하여 무기반입을 모의, 북경에서 폭탄 36개, 권총 5정, 독립선언문 3천매 등을 소지하여 입국, 거사를 계획 중 밀고자에 의해 1923년 3월 15일 붙잡혔다. 그리하여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8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른 후 만기출옥하여 1941년 다시 만주로 건너갔다. 광복후 광복회(光復會) 고문, 광복회장을 역임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77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1977
독립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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