劉成三
(1897) ~ (1920-08)·일제강점기
이명·자·호 張飛, 金凞俊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유성삼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평남 강동(江東) 사람이다. 1919년 조국의 독립운동에 투신할 목적으로 만주로 망명한 그는 여순근(呂淳根)·주석환(朱錫煥) 등과 함께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 가입하여 일제의 관공서와 일제 고위관리를 암살·처단할 것을 지시받고 동년 11월 표영준(表永俊)·주석환 등과 함께 국내로 밀파되었다. 귀국 후 1920년 3월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의정원 황해도 대의원 김석황(金錫璜) 등과 함께 평양 기홀병원(紀笏病院)에서 독립의용단(獨立義勇團)을 조직하고 테러와 암살을 통한 의열투쟁을 전개할 것을 결의하였으며, 동년 7월에는 평양에서 김석황·김예진(金禮鎭)·장혜근(張惠根) 등 동지들과 회합을 갖고 평남 제3부와 평양 경찰서, 그리고 평양부청(平壤府廳)을 폭파할 것을 협의·결정하였다. 이에 따라 그는 거사에 필요한 폭탄과 권총을 반입하여 단원인 여행렬(呂行烈)에게 은닉시키도록 지시하였다. 1920년 8월 3일 오후 9시경, 그를 비롯한 의용단원들은 세 부대로 편성되어 평남 제3부·평양경찰서·평양부청 청사에 각기 폭탄을 투척할 것을 계획하였다. 이에 따라 그는 표영준(表英俊)과 함께 평양시내 각 곳에 「관공리의 퇴직을 명령함」「정탐자에게 회개를 명함」「자산가에게 독립자금 출연을 권고함」「일반 국민에게 거의를 명령함」등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 명의의 최급경고문(最急警告文)을 배포하는 한편, 일제 관공서 폭파작업에 관여하였으나 평남 제3부 청사에만 폭탄을 투척하여 파손시키고 일경의 검거를 피해 은신하였다. 의거 4일 후인 7일 밤, 그는 표영준 등과 함께 평남 제3부 소속 경찰관이 자동차를 타고 지날 때에 사살할 것을 모의하고, 이튿날 밤 거사장소를 답사하며 실행방법을 연구하였다. 그리하여 동월 9일 오후 9시경, 표영준과 함께 거사장소에 대기하던 중 평안자동차상회 소속의 자동차가 지나가자, 평남 제3부 경찰관의 차로 오인하여 권총을 발사하고 은신하였다. 그 뒤 8월 16일 평양부 신양리(新陽里)에서 동지들이 잘못 사격한 총탄에 맞아 외국인이 경영하는 평양 기홀병원에 입원하였으나 며칠 후 서거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1995
독립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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