劉順姬
1926-07-15 ~ 2020-08-29·현대
이명·자·호 劉順愛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유순희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황해도 황주(黃州) 사람이다. 1940년 9월 17일 중국 중경(重慶)에서 창설된 한국광복군총사령부(韓國光復軍總司令部)는 임시로 광복군을 4개 지대(支隊)로 편성하고 각 지대 내에 3개 구대(區隊)를 두고, 다시 각 구대 내에 3개 분대(分隊)를 설치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광복군의 부대 편성은 부대원의 다수 부족으로 1942년 4월 김원봉(金元鳳)이 이끄는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가 광복군 제1지대로 편입함에 따라 겨우 2개 지대로 편성될 정도였다. 이에 따라 광복군총사령부가 1942년 2월 김학규(金學奎)를 산동성(山東省)으로 특파하여 일본군으로 강제 징집당한 한국 청년들을 대상으로 초모공작(招募工作)을 전개하도록 하자, 김학규는 양자강 이남의 안휘성(安徽省) 부양(阜陽)에 머물면서 3년 남짓 초모활동을 전개하였다. 1944년 11월 중국 하남성(河南省) 녹읍(鹿邑)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전방 특파원 조성산(趙城山)과 접선하여 지하공작원으로 활동한 그는 1945년 2월 김학규가 이끄는 광복군 제3지대 화중지구(華中地區) 지하공작원 윤창호(尹昌浩)로부터 광복군 지하공작원으로 임명한다는 임명장을 수여받았으며, 동월 중순 동지(同地)를 탈출하여 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한 뒤 제3지대 제1구대 본부 구호대원(救護隊員)으로 광복이 될 때까지 조국독립투쟁을 위해 적극 활동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1995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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