劉載範
(1873)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유재범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07년 음력 8월 충북 충주(忠州)ㆍ청풍군(淸風郡) 일대에서 이경희의진(李慶熙義陣)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일제는 1907년 6월 헤이그특사를 빌미로 배일의식이 강한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순종을 즉위시켜 한국 식민지화에 더욱 박차를 가하였다. 일제 통감부는 정미칠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여 한국통치권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나아가 군대해산을 단행하여 한국의 무장력을 해체하였다. 1907년 고종 황제가 강제 퇴위하고 군대가 해산하면서 해산 군인을 중심으로 정미의병항쟁이 시작되었다. 당시 충북 지역에는 이강년 의병장을 비롯하여 방필성(方必成)ㆍ백남규(白南奎)ㆍ왕회종(王會鍾)ㆍ제갈윤신(諸葛允信)ㆍ박준성(朴準成) 등의 의병장이 활약하였다. 특히 청풍 지역에는 권용일(權用佾)ㆍ하한서(河漢瑞)ㆍ김상한(金商翰)ㆍ김종태(金鍾泰)ㆍ김규철(金圭喆)ㆍ장인환(張仁煥) 등이 의진을 조직해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유재범은 1907년 음력 8월 2일 이경희의진에 참여하여 의병들과 함께 총기를 휴대하고 충주ㆍ청풍ㆍ덕산(德山)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고 일제 기관을 공격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08년 9월 18일 공주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폭동죄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5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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