劉振東
1908-06-10 ~ (1961)·일제강점기
이명·자·호 劉光波, 劉正宇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유진동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유진동은 중국 상해(上海)에서 동제대학(同濟大學) 의과 대학을 졸업하였으며, 부인은 강영파(姜暎波)이다. 1928년 동제대학에서 재(在) 상해 한인학우회(韓人學友會)를 결성하여 서무위원으로 활동하였고 1931년에는 학우회 대표로 상해에서 개최된 한인각단체대표회의(韓人各團體代表會議)에 참석하였다. 1931년부터 1934년까지 흥사단(興士團) 원동위원부(遠東委員部)에 소속되어 활동하고 1932년 1월에는 동지들을 규합하여 상해한인청년당(上海韓人靑年黨)을 조직하였다. 1933년에는 한국독립당원(韓國獨立黨員), 1936년에는 민족혁명당원(民族革命黨員)으로 활동하였고 1940년부터는 광복군사령부(光復軍司令部)의 군의처장(軍醫處長)이 되었으며, 1942·43년경에는 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 의원으로 활동하였다. 1945년 11월 김구 등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환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7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07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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