兪鎭律
(1874) ~ 미상·일제강점기
이명·자·호 兪가이 니콜라이, 페트로비치, 兪辰律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유진률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08년부터 1911년까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대동공보』와 『대양보』 등의 편집과 발행을 담당하였고, 안중근(安重根)과 함께 이토 히로부미 처단을 계획하였으며,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블라디보스토크 지방회와 권업회(勸業會)에서 활동하였다. 1908년 2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최봉준(崔鳳俊) 등이 『해조신문(海朝新聞)』을 간행하자, 『해조신문』 아지미(芽芝味, adimi) 발매소를 담당하여 한인들에게 반포하였다. 같은 해 5월 26일 『해조신문』 발행이 중단되자, 이강(李剛)ㆍ차석보(車錫甫)ㆍ문창범(文昌範) 등 35인과 다시 신문을 발행하기 위해 자본을 모집하여 6월 『대동공보(大東共報)』를 간행하였다. 1909년 4월 『대동공보』 발행인이 되어 국내 『대한매일신보』의 임치정(林蚩正)과 서신을 교환하였다. 같은 해 9월 미주 국민회 산하 블라디보스토크지방회에서 평의원으로 선임되었다. 1909년 10월 대동공보사 사무실에서 이강ㆍ정재관(鄭在寬)ㆍ안중근(安重根)과 함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처단을 계획하였고, 이토 히로부미 처단 성공 후 의연금을 모집하여 안중근의 재판비를 지원하였다. 1910년 2월 안중근의 유족 구제를 목적으로 한 공동회(共同會)를 조직하였고, 4월에는 1월 중순 폐간된 『대동공보』를 다시 간행하면서 편집장 겸 발행인이 되었다. 1910년 8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일제의 한국 병탄을 반대하기 위해 '대한의 광복을 죽기로 맹세하고 성취한다'는 한국국민의회(일명 성명회) 선언서에 서명하였다. 1911년 6월 『대동공보』의 후신으로 『대양보(大洋報)』를 창간하여 편집 및 발행인이 되었고, 블라디보스토크 한인거류민회 회장과 민족운동단체인 권업회의 평의원으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같은 해 9월에는 국민회 지방회 설립과 인가에 관련된 내용의 서신을 안창호(安昌浩)에게 보내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4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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