兪鎭商
1888-09-05 ~ 1974-12-28·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유진상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유진상은 인쇄업을 하면서 대한독립을 기념하는 문서를 인쇄하고 배포하려는 등 조국독립을 위해 활동하였다. 1920년 2월 23일,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청량리(현 서울)에서 이동욱(李東旭)이 작성한 「대한독립 1주년 기념 축하 경고문」을 보고, 경고문 인쇄 및 배포에 동참하기로 하였다. 경고문은 ‘우리들 조선인은 끝끝내 작년 3월 1일의 독립선언 취지를 체득, 그 기념일인 3월 1일을 기해 조선독립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남녀 학생은 동맹 휴교하고 상점은 폐점하여 조선인은 일제히 자유만세를 높이 부르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유진상은 24일, 이동욱으로부터 경고문을 받아 인쇄기를 준비하여 26~27일 이틀간 이동욱·권학규(權學圭)와 함께 2,300매 가량을 인쇄하고, 29일 아침 동생 유진익(兪鎭翊)을 시켜서 이동욱 집에 전달하다가 경찰에 발각, 체포되었다. 이로 인해 유진상은 1920년 12월 2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제령 제7호·출판법·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미결구류 200일 통산)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08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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