柳鎭玉
(1881)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유진옥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충북 제천(堤川) 출신으로 1907년 음력 9월부터 1908년 10월까지 정해창의진(鄭海昌義陣)에 소속되어 충북 영춘(永春), 강원도 영월(寧越)·원주(原州) 등지 에서 의병활동을 했다. 정해창은 제천 출신으로 이강년의진(李康秊義陣)에 참모로 참가하여 제천을 비롯한 충북 각지에서 혁혁한 전과를 거두었다. 1907년 10월 정해창은 이강년의 진의 중군장(中軍將)이 되어 1908년 이강년이 청풍(淸風) 작성(鵲城)전투에서 부 상을 입고 체포될 때까지 활약하였다. 그 후 이강년 휘하의 부장(副將) 들은 각 처에서 소규모 의병부대를 거느리고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김상태(金相泰)는 소백산을 중심으로 강원도 영월과 경북 북부지역, 성익현(成益鉉)은 강원도 삼 척, 변학기(邊鶴基)는 영양·울진 등지에서 일본군에 대해 유격전을 감행하였다. 그리고 정해창은 충북 제천·영춘, 강원도 영월 등지에서 대일항전을 전개하다 가 1909년 4월 28일 가평전투(加平戰鬪)에서 전사·순국하였다. 유진옥은 1907년 음력 9월 26일 같은 마을 정덕관(丁德寬)의 권유로 의병에 참가하여 이강년의진의 중군장 정해창 부대에서 충북 영춘, 강원도 영월 일원 에서 의병 활동을 하다가 1908년 11월 11일 체포되었다. 소위 폭동수종죄(暴動隨從罪)로 기소되어 1908년 11월 21일 공주지방재판소에 서 태형(笞刑) 100도(度)에 처해졌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13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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