柳贊玉
1916-10-04 ~ 1946-05-16·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유찬옥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전남 나주(羅州) 사람이다. 나주 농업보습학교(農業補習學校) 학생으로 동교(同校) 학생 홍민후(洪敏厚), 신간회(新幹會) 나주지회(羅州支會)의 박공근(朴恭根)·양영택(梁永澤)·박동희(朴東熙) 등과 함께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운동 당시 수감된 학생들을 석방시키기 위한 시위운동을 주도하였다. 이에 따라 동년 11월 26일 박공근의 집에서 회합을 갖고 약 2,000부의 격문을 인쇄하였다. 다음날 27일 농업보습학교 및 보통학교 학생들에게 시위운동을 하도록 권유하여 농업보습학교 학생 47명과 보통학교 학생 130명이 항일시위를 전개하도록 하였다. 이 사건으로 그는 징역 10월을 받고 대구감옥에서 옥고를 치루었다. 또한 수감당시 의열투쟁(義烈鬪爭)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장진홍(張鎭弘)이 옥중에서 자결·순국한 사건과 관련하여 강력히 항의하다가 징역 8월을 가형 받았다. 1931년 8월 20일 출옥한 후, 1932년부터 나주노동조합운동(羅州勞動組合運動)에 참여하여 활동하다가 1932월 11월 검거되어 기소유예(起訴猶豫)로 풀려 나왔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01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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