劉泰秀
(1867)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유태수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기도 용인(龍仁) 사람이다. 김봉기(金奉基) 의진에 참여하여 경기도 광주(廣州)·용인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일제는 1907년 들어와 광무황제를 강제 퇴위시키고, 이어「정미7조약(丁未7條約)」을 강제한 뒤 8월 1일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시켜 우리 민족의 무력을 말살시켜갔다. 이에 김봉기 의병장은 군대해산 직후 이근풍(李根豊)·주창룡(朱昌龍) 등과 함께 경기도 광주·용인 등지에서 의병을 모집하여 거의하고, 이천(利川)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유태수는 김봉기 의진에 가담하여 박춘식(朴春植)·홍금만(洪今萬)·송금봉(宋今奉) 등 동료 의병들과 함께 경기도 광주·용인 일대에서 군자금을 수합하면서 대일 항전을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1908년 2월 11일 상기 3인과 함께 용인군 성산리(城山里)와 마가리(麻柯里)에서 군자금을 징수하였고, 또 광주군 전지리(前枝里)에서 군자금을 수합하다가 붙잡혔다. 그리하여 1908년 6월 17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유형(流刑) 10년을 받아 고초를 겪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1995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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