柳澤秀
(1901) ~ 1929-02-27·일제강점기
이명·자·호 柳淳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유택수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기도 이천(利川) 사람이다. 이천 읍내에서 서당 훈장을 하던 유창룡(柳昌龍)의 둘째 아들로서 동생 유남수(柳湳秀)와 함께 참의부(參議府) 국내 특파원 이수흥(李壽興)을 도와 무장항일 활동을 하였다. 1926년 5월 이수흥이 일 요인암살 및 군자금 모집 등을 목적으로 국내에 들어오자 동소문파출소 습격 2개월후인 동년 9월 10일 이수흥을 도와 경기도 안성에서 부호 박승륙(朴承六)으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려고 하다가 불응하자 그의 아들 박태병(朴泰秉)등을 사살하였다. 또한 동년 10월 20일에는 이수흥이 이천의 현방리(玄方里) 주재소등을 습격한 뒤에는 동생과 함께 그를 도피시켜 주었다. 동년 10월 25일에 그는 서울 수은동(授恩洞) 전당포를 습격하고 군자금을 모집하려고 하다가 주인을 사살하기도 하였다. 서울·경기 일원의 이러한 4대사건으로 수천명의 일경이 동원되어 계엄상태가 수개월 계속되었으나 용의주도하게 피신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26년 11월 마침내 일경에 체포되었으며, 수년간의 옥고 끝에 1928년 12월 2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되어 1929년 2월 27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1968
독립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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