劉判述
1905-10-01 ~ 미상·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유판술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전북 고창(高敞) 사람이다. 흥덕보통학교 재학중인 1920년 3월에, 3·1독립만세운동의 1주년을 맞이하여 이종철(李鍾喆)·이대성(李大成)·이종주(李鍾株) 등과 함께 기념시위를 통하여 민중궐기를 촉구하는 한편 독립운동의 기세를 높이기로 결의하였다. 이들은 동년 3월 10일에 이종주의 집에 모여 태극기 12매와 '대한독립'이라고 쓴 깃발을 만들고, 깃발 뒷면에는 '이를 파기하는 자는 참살하겠다'는 경고문을 붙인 뒤 이를 성내면(星內面) 사무소 구내의 공터에 세우는 등 주요지역에 태극기를 붙였다. 그런데 이 사실이 흥덕면(興德面) 주재소에 알려짐으로써 일경에 붙잡혔다. 붙잡힌 후 그는 혹독한 고문을 당하다가 1921년 1월 15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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