柳灐錫
1914-02-17 ~ 1973-10-17·현대
이명·자·호 張天民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유형석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평안북도 강계(江界) 사람이다. 1932년에 만주(滿洲)로 망명하여 봉천초급학교(奉天初級學校)에서 수학하였다. 1933년 11월경에는 이청천(李靑天) 등 독립군 간부들이 추진하여 설립된 중국군관학교 낙양분교(洛陽分校)에 입학하여 중국인 군관들과 함께 훈련을 받았으며, 1934년 봄에는 한국인 훈련생 90여명만으로 1개반을 특설하여 독립전쟁을 담당할 군관양성사업을 추진함에 따라, 여기서 정치훈련과 전술에 관한 교육을 받았다. 또한 남경(南京), 낙양(洛陽) 등지에서 활약하던 김동우(金東宇)·오면직(吳冕稙)·한도원(韓道源) 등과 1936년 1월에 독립운동 단체인 맹혈단(盟血團, 일명;猛血團)을 조직하고 무장 항일활동을 전개하고 군자금 조달 활동을 전개하던 중 1936년 2월 23일에 상해(上海) 영국조계 정안사로(靜安寺路) 장두철(張斗徹)의 집에서 일본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다. 그리하여 본국으로 압송된 그는 1937년 4월 16일에 해주(海州)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 유지법 위반과 강도 미수 등의 혐의로 징역 5년형을 받고 해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1990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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