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慶彬
1919-01-14 ~ 2018-03-07·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윤경빈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평남 중화(中和) 사람이다. 1944년에 학도지원병(學徒志願兵)이라는 미명 아래 일본군 부대에 강제 입대하였던 한적 학도병들이 각 지역에 구축된 공작 거점을 통해서, 또는 공작원과 직접 접선이 되었거나 그렇지 않으면 숙원의 독립군이 되겠다는 일념으로 자발적인 행동을 취하여 개별 또는 집단적으로 적 병영을 탈출, 공작원의 안내로 혹은 중국 유격대를 통하여 광복군으로 집결하게 되었다. 그도 이때 일본군을 탈출하여 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하였다. 그후 부양현(阜陽縣) 임천(臨泉)에 주둔한 중앙육군군관학교 제10분교 간부훈련반에 설치된 한광반에서 군사교육훈련을 받고 제1기생으로 졸업하였다. 그는 1945년 1월말 학병 탈출 동지 50여명과 함께 부양현임천(阜陽縣臨泉)으로부터 중경(重慶)으로 왔으며, 임시정부와 중국측 인사들의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그리고 광복군 총사령부에 소속되어 광복군 부위(副尉)로서 판공실(辦公室)부관으로 복무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1990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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