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東涉
(1884)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윤동섭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강원도 강릉(江陵) 사람이다. 의병장으로 함남 문천(文川)·고원(高原)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일제는 1904년 러시아와의 전쟁 도발 직후 곧바로 우리 정부를 강박하여 「한일의정서」를 강제로 체결케 하고, 같은 해 8월 「한일협약」을 강제하여 고문정치를 실시하였다. 이어 1905년 전쟁에서 승리하자 「을사륵약」을 체결하여 자주적 외교권을 강탈하는 한편 통감부를 설치하여 그들의 지배정책을 가속화시켰다. 더 나아가 1907년 헤이그 특사사건을 빌미로 광무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키고 「정미7조약(丁未7條約)」을 체결한 뒤, 곧바로 군대해산을 강행하여 우리 민족의 무력을 말살하였다. 이러한 국가존망의 위기에 직면하여 전국 각지에서는 의병이 속속 봉기하여 일본군을 추출하고, 친일주구배들을 처단함으로써 국권회복을 달성하고자 하였다. 윤동섭은 대한제국 개성진위대(開城鎭衛隊) 병사 출신으로 1907년 군대의 강제해산에 비분 강개하여 1908년 4월 10일 거병한 뒤, 140∼150여 명의 부하 의병들을 거느리고 함남 문천·고원 등지를 근거지로 활동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같은 달 10일 문천군의 순사주재소를 습격하여 불태우고, 일본인을 처단하는 한편 군 세무서 건물을 파괴하고 문서를 소각시켰다. 같은 해 5월 12일에도 그는 부하 약 300여 명을 이끌고 고원군 읍내를 습격하여 이곳에 주둔하던 일본군 수비대 및 경찰대와 격전을 치렀다. 이후 그는 산간 벽지를 전전하면서 소부대 유격전술로 지속적인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995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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