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寶民
(1900)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윤보민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황해도(黃海道) 봉산군(鳳山郡) 사리원(沙里院) 출생으로 서울에서 이화학당(梨花學堂) 중등과를 졸업했다. 봉산군 영천면(靈泉面)의 의성학교(義盛學校) 교사로 근무하다가, 1921년 4월 5일에 사리원 사립덕성학교(私立德盛學校) 교원이 되었다. 4월 25일 사리원교회 면려청년회(勉勵靑年會) 창립식에서 ‘인류의 가치’라는 제목으로 연설했다. 1922년 3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新韓村) 삼일여학교(三一女學校) 교사로 부임하였다. 삼일여학교는 신한촌 기독교회에서 한인 자제들을 교육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신한촌의 오순형(吳舜炯) 목사는 삼일여학교를 설립하고 서울의 윤보민을 교사로 초빙하였다. 이후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 삼일여학교의 교사로 재직했다. 1922년 10월 24일 러시아 연해주의 한인 여성운동 단체인 연해주애국부인회(沿海州愛國婦人會)의 대표가 되어 국민대표회의(國民代表會議)에 참석하고자 상하이(上海)로 이동했다. 1922년 12월 국민대표회주비위원회의 예비회의를 거쳐 1923년 1월 상하이에서 국민대표회의가 개최되었다, 윤보민은 1923년 2월 연해주애국부인회 대표로 국민대표회의에 참석하여 활동하였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2022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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