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復榮
1868-04-28 ~ 1967-02-10·일제강점기
이명·자·호 尹胄榮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윤복영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기도 장단(長湍) 사람이다. 1913년 만주로 망명하여 1919년에는 김좌진(金佐鎭)·서 일(徐一)·김 성(金星) 등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북로군정서에 참가하여 길림분서(吉林分署) 고문으로 활동하였다. 1922년에는 길림성 전만통일준비회 집행위원으로 일하였으며 1925년에는 북만 영안(寧安)에서 김좌진·김 혁(金赫) 등이 북로군정서 정신에 입각하여 조직한 신민부(新民府)에 가입, 신민부 고문 및 외교위원으로서 활동하였다. 또한 동년에 길림성 한족동향(韓族同鄕)회장에 임명되었으며, 1925년에는 남북 만주 한국독립운동 단체통합회의의 개최시 길림성 한교(韓僑)대표로 출석하여 국민의회와 한국독립당 조직을 위하여 일하였다. 1930년에는 만주에서 황무지와 마초장(馬草場)을 개간하여 독립군을 양성하고자 하였으나 만주사변으로 실패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1990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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