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鳳秀
1889-01-20 ~ 1971-10-18·일제강점기
이명·자·호 平沼鳳水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윤봉수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4월 2일 경남 울산군(蔚山郡) 언양면(彦陽面)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조선독립을 요구하는 함성과 저항이 높아가고 있던 1919년 3월 하순경 울산군 상남면(上南面)에서는 천도교 계통의 유지들이 모여 독립만세운동을 협의하였다. 즉 동면(同面) 길천리(吉川里)에 사는 이무종(李武鐘)·이규인(李圭寅) 등 6인은 비밀리에 동지들을 규합하는 한편 거사일을 4월 2일 언양 장날로 정하였다.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오던 이들은 4월 1일 밤 이규인 소유의 빈 집에 모여 거사를 의논하면서 밤을 새며 많은 태극기를 만들었다. 장날인 다음날 이른 아침 이들은 태극기를 품고 언양 읍내 시장으로 잠입하였다. 수많은 장꾼들 사이에서 주동 인물 6인은 태극기를 장꾼들에게 나누어 준 후 읍내 시장 복판인 남부리(南部里) 도로상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 장꾼 1,000여 명은 일제히 여기에 호응하여 만세를 외치니 시장은 삽시간에 감격과 흥분으로 휩싸였다. 긴급 출동한 일본경찰은 시위군중을 저지하며 주동 인물 몇 명을 언양주재소로 연행하였다. 이에 분노한 시위 군중은 만세를 외치며 주재소로 몰려갔다. 군중이 돌을 던지며 동지의 석방을 요구하자, 다급해진 일제 군경은 발포하여 시위군중 중 1명이 즉사하고 남녀 5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시위군중이 흩어지자 군경은 대대적인 검거에 나서 약 48명의 인사들이 체포되었다. 윤봉수는 이날의 만세시위운동에 참가하였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1919년 4월 10일 부산지방법원 울산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09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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