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山岳
1895-02-01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윤산악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시작된 3.1만세운동은 빠르게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이러한 소식은 강원도(江原道)에도 전파되었다. 강원도 원주(原州)에 거주하는 윤산악은 서울에서 벌어진 만세운동의 취지에 공감하였다. 그리고 원주에서 만세운동을 일으키기 위하여 4월 8일에 동료들을 모았다. 그는 이재손(李在孫)‧원성규(元成圭) 등의 동지들과 함께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원주군 흥경면(興京面) 사제리(沙堤里) 원현복(元顯福)의 집에서 서당 교사 김수익(金壽翼)에게 만세운동의 취지를 작성하게 했다. 이 선전문과 연락문을 대안리(大安里)와 매지리(梅芝里) 등 근처 마을의 주민에게 전달하였다. 4월 9일 윤산악 등 시위 주도자들과 마을 주민 200여 명은 사제리에 모여 만세를 합창하고, 면사무소가 있는 흥업리 방향으로 행진하였다. 이 과정에서 출동한 일제 헌병에게 다른 시위대와 함께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1919년 7월 17일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22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