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錫鳳
1842-10-26 ~ 1910-11-06·조선
이명·자·호 자:운서(字:雲瑞), 호:삼희당(號:三希堂)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윤석봉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895년에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제천에서 의병을 일으킨 유인석 의병장에게 편지를 보내어 의병을 일으켜야 한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1906년 5월 11일(음 4월 18일) 민종식 의병장은 홍산(鴻山)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서천(舒川)·비인(庇仁)·판교(板橋)를 거쳐 남포(藍浦)에 이르렀을 때는 의병의 규모가 약 1천 명에 이르렀다. 홍주(洪州)로 진격하여 5월 19일(음 4월 26일)에 홍주성(洪州城)을 탈환했다. 그러나 일본군의 역습으로 5월 31일에 홍주성은 다시 일본군에게 함락 당하고 말았다. 민종식의진은 끝까지 저항하였으나 많은 사상자를 내고 의병장 민종식 등은 성을 탈출하여 다음을 기약하였다. 윤석봉은 홍주의진이 홍주성으로 진격할 때 민종식의진에 들어가 참모로 활동했다. 신보균(申輔均) 등과 함께 홍주성 전투에 참여했다. 홍주성이 함락될 때 82명의 의병 참가자들과 함께 일본군에게 체포되었다. 경성수금장(京城囚禁場)에서 45일간 수감된 후 석방되었다. 정부는 2019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2019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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