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信民
1901-04-01 ~ 미상·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윤신민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32년 10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 중국 상하이에서 의열단장 김원봉(金元鳳)과 긴밀한 연락을 취하며 의열단 부인부 간부로 활동하였다. 이때 의열단원이었던 남편 천병림(千炳林)과 함께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朝鮮革命軍事政治幹部學校, 중국국민정부 군사위원회 간부훈련반 제6대)에 입학할 예정인 동지들에게 거주 장소를 제공하고, 난징(南京)까지 이동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등의 임무를 맡아 힘을 기울였다. 1938년 4월 중국 충칭(重慶)에서 조선민족혁명당 당원으로 활동하며 이재상(李載祥) 등과 함께 제1 소조회(小組會)에서 활동하였다. 이후 1943년 3월 15일 이범석(李範錫)·최용덕(崔用德) 등과 함께 한국독립당에 가입하고, 한국독립당 제1구(第1區)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21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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