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載建
1884-10-16 ~ 1937-11-19·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윤재건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황해도 해주(海州) 사람이다. 1919년 4월 3일 최봉조(崔奉祚)·이진각(李鎭珏)·이용선(李龍善)·서장관(徐長寬) 등과 함께 가좌면 취야리(茄佐面翠野里)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시위를 주동하였다. 이곳은 옹진군 마산면(甕津郡馬山面)과 장연군 모곡면(長淵郡牡谷面) 방면에서 해주로 들어가는 큰 길들이 모여 교통이 번잡한 곳이다. 평소 몸이 불편하던 그는 이날 오후 2시 장터에 약을 사러 나왔다가 천도교(天道敎)도와 기독교(基督敎)도가 중심이 되어 독립만세시위가 전개되고 있음을 알고, 이에 참여하여 수천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휘두르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면사무소와 경찰주재소를 습격하였다. 결국 체포되어, 해주지방법원과 평양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3년형을 받고, 고등법원에 상고하여 일제식민통치의 부당성을 들어 무죄임을 역설하였으나, 이해 10월 25일 기각당하여 옥고를 치르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