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河運
1904-03-17 ~ 미상·현대
이명·자·호 尹尙龍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윤하운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4년 8월 중국 요녕성(遼寧省) 봉성현(鳳城縣) 석두성(石頭城) 판서구(板西溝)로 이주한 후, 대한통의부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25년 12월 정의부에 가입하여 활동하던 중, 1926년 10월 개인적인 사정으로 정의부를 나와 농업에 종사하였다. 1930년 이진무(李振武)의 권유에 따라 국민부 산하 조선혁명군에 가입하고, 이진무 부대에 편입되었다. 1931년 8월 홍학순(洪學淳)·주석산(朱石山)과 국내로 잠입하여 평안북도(平安北道) 의주군(義州郡) 옥상면(玉尙面)에서 160여 원의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같은 해 12월 다시 의주군 광평면(廣坪面)으로 잠입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이러한 활동을 하던 중 1932년 1월 10일 중국 봉천성(奉天省) 안동현(安東縣)에서 일제 경찰에 의해 한성걸(韓聖杰)·이월노(李月老)·김태묵(金泰默) 등 조선혁명군 대원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1933년 6월 26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을 이유로 징역 4년을 받았다. 이후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1935년 12월 21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21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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