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赫
(1885)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윤혁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평안북도(平安北道) 가산군(嘉山郡) 출신이다. 1903년 1월 29일 하와이로 이민을 왔고, 1906년 1월 21일 북미로 이주하였다. 1911년 11월 30일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샌프란시스코지방회 평의원으로 선출되었으며, 1913년 6월 샌프란시스코지방회 재무가 되었다. 1914년 샌프란시스코지방회 법무원, 1915년 11월 총무가 되었다. 1916년 2월 샌프란시스코 지방회 부회장에 선출되었고, 같은 해 3월 북미지방총회 구제원이 되었다. 1917년 1월 샌프란시스코지방회 부회장, 2월 8일 북미지방총회 법무원과 북미총회 의무금 수봉위원으로 임명되었다. 1918년 11월 24일부터 1919년 12월 15일까지 대표의연‧독립의연‧애국금‧공채금 등으로 114.85원의 독립운동자금을 납부했다. 1920년 2월 21일 윌로우스지방회 총무로 선출되었으며, 1925년 3월 22일 스탁톤지방회 학무원이 되었다. 1931년 4월 12일 로스앤젤레스지방회 의무금 수봉위원으로 임명되었다. 1931년 12월 5일부터 7일까지 대한인국민회‧나성한인공동회‧중가주한인공동회‧묵경자성단 등 4개 단체가 공동으로 조직한 미주한인연합회의 수전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39년 1월 10일 로스앤젤레스지방회 감찰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40년 1월 신한민보 식자기계 구입 의연금 모집위원이 되었고, 4월 7일 대한인국민회 중앙집행위원이 되었다. 1941년도 대한인국민회 제5차 대표대회에서 중앙집행위원 겸 실업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42년도 대한인국민회 제6차 대표대회에서 중앙집행위원 겸 구제위원, 로스앤젤레스지방회 대표로 선정되었다. 1943년 9월 4일 대한인국민회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재미한족연합위원회 대표로 선임되었고, 재정조사위원으로 선정되었다. 대한인국민회 제8차 대표대회에서 감찰위원으로 선출되었고, 1944년도 로스앤젤레스지방회 집행위원과 실업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44년 4월 8일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부 국방과 위원으로 선출되었고, 같은 해 10월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전체대표회 대한인국민회 파견 대표로 선정되었다. 대한인국민회 제9차 대표대회에서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13년부터 1945년까지 의무금‧국치기념금‧독립의연‧인구세‧광주학생운동후원금‧3.1적립금‧임시정부후원금 등을 여러 차례에 걸쳐 지원하였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22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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