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亨道
(1871)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윤형도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평남 대동(大同) 사람이다. 1919년 3월 4일 대동군 금제면(金祭面) 반석면(班石面) 상사리(上四里) 원장(院場) 장날에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이곳의 독립만세운동은 반석면 반육리(班六里)에 있던 반석교회(盤石敎會)의 장로인 조진탁(曺振鐸)이 2월 28일 평양에 갔다가 그곳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뒤, 독립선언서를 얻어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오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그런데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사전준비를 하던 중 모락장(沙川)교회의 간부 10여 명이 헌병주재소로 강제 연행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러나 만세운동은 예정대로 3월 4일 10시 독립선언식을 시작으로 전개되었다. 시위군중은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원장장터로 행진하였다. 이에 그곳에 모인 장꾼들도 합세하여 시위군중은 3,0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이때 최능현과 송현근은 모락장의 시위운동 준비중에 붙잡힌 동지들을 구하기 위해 시위군중들을 모락장으로 이끌었다. 윤형도는 시위대열에 참가하여 앞장서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여 모락장 입구까지 들어섰다. 대기하고 있던 일본 헌병들은 발포하며 이들을 저지하려고 하였지만, 시위군중들은 투석으로 대항하며 일경에 맞섰다. 이후 윤형도는 일경의 추적을 피해 은신해 있던 중 1927년 붙잡혀 6월 23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징역 7년을 받고 공소하여 같은 해 10월 23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5년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1996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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