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浩炳
(1876)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윤호병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강원도 철원군(鐵原郡) 갈말면(葛末面) 문혜리(文惠里)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1일 면 소재지인 문혜리의 서당 훈도(訓導) 신성규(申聖奎)와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 학생 김칠룡(金七龍)은 서로 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협의하였다. 이들은 각 마을에서 집집마다 한사람씩 참가하여 통성리,동막리,내대리,도창리(道昌里) 주민은 청양리주재소가 있는 지경터로 모이게 하고, 문혜리,군탄리(軍炭里) 등 남부 주민은 문혜리 면사무소가 있는 어음 째로 집결시켰다. 3월 12일 청양리 주재소 앞 벌판에 모인 군중은 태극기를 높이 세우고 만세를 불렀다. 내대리의 지경터에서 오후 1시경부터 시위를 벌이던 군중은 방향을 바꾸어 문혜리로 갔다. 군중이 문혜리에 도착할 즈음, 면사무소의 직원은 모두 도망쳐 버렸다. 군중은 면사무소와 그 부근에서 밤이 새도록 만세를 불렀다. 이 날 만세시위에서 윤털보로 알려진 윤호병과 임낙호의 활동이 두드려졌다. 윤호병과 임낙호는 군중의 선두에 서서 활약하다가 붙잡혔다. 이로 인해 윤호병은 1919년 6월 2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10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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