陰聖國
1891-03-06 ~ 1935-07-19·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음성국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기도 장단(長湍) 사람이다. 일찍이 독립운동에 뜻을 두고 있던 그는 1920년 유돈상(柳敦相) 등과 함께 중국 즙안현(輯安縣)에서 독립단(0獨立團)을 조직하고 서기로서 이도세자(二道歲子) 일대에서 활동하던 중 일경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6년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마음이 흩어진 것은 진정한 나라 위한 교육이 없는 까닭이니 참으로 인재 양성이 급하다고 여겨 유돈상, 음성진 등과 더불어 학교를 설립하여 항일민족교육을 실시하였다. 그후 국민부(國民府)와 조선혁명당, 조선혁명군이 결성되자 이와 연계하여 지원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1932년 국민부의 영릉총관(永陵總管)을 맡아 국민부 지방조직의 확장을 위해 노력하였다. 1934년 조선혁명군의 양세봉(梁世奉) 총사령이 순국한 후에는 박대호(朴大浩) 등과 함께 붕괴위기에 처한 조선혁명군의 재건에도 힘썼다. 그는 표면상 만주국 능가선민회장(陵街鮮民會長)으로 겉으로는 일제의 정책에 호응하는 척하면서 암암리에 조선혁명군의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활동이 일본 밀정에 의해 발각, 체포되어 가혹한 고문을 당한 후 일본영사관을 경유, 무순감옥에 수감되었고 이곳에서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00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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