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敬初
1884-02-03 ~ 1959-01-26·일제강점기
이명·자·호 광본경초(廣本敬初)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경초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3월 30일 경기도 이천군 마장면(麻長面) 오천리(午川里) 오천 장터에서 1,000명의 대규모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이기재(李起載)·이창호(李昶鎬)가 통문(通文)을 작성해 ‘3월 30일 오천 장날 장터에서 집합하라’고 각 마을에 배포하였다. 3월 30일 오전 9시경 양촌리(陽村里) ‘사회마당’에 집합한 군중들은 오천리 시장터에서 독립만세를 불렀다. 3월 31일 장암리(長巖里)에서 천도교 교도들이 중심이 되어 마을 주민 약 250명이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경초 등 30~40대 장년층들이 중심이 되어 주민들을 참여를 이끌었다. 이들은 마을에서 만세를 부르고 군중들을 이끌고 면소재지인 오천리로 향했다. 오천리에 도착한 군중들은 오천리헌병주재소(午川里憲兵駐在所)로 가서 주재소를 습격하였다. 헌병들은 공포(空砲)를 발사하고 무력 진압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2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마장면 장암리, 오천리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한 이경초는 헌병에 체포되었다. 4월 18일 이천헌병분견소(利川憲兵分遣所)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60도(度)의 즉결처분을 받았다. 정부는 201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19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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