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景和
1873-08-21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경화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함북 성진군 성진면 사람이다. 1919년 3월 10일 성진군 읍내에서 기독교인들이 주도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여 약 300~400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고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어 이경화는 성진군 학동면 방동리 김광희(金光熙)의 집에서 허채(許采) 외 수명에게 <조선독립선언서>의 취지를 설명하고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도록 설득하여 동의를 얻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학동면 방동리의 면사무소 부근에서 주민 30여 명을 이끌고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시위 후 체포된 이경화는 1919년 10월 27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을 받았고, 1919년 11월 28일 경성복심법원과 1920년 1월 17일 고등법원에서 상소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08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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