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古鏡
1882-11-20 ~ 1943-01-21·일제강점기
이명·자·호 廣原秉道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고경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이고경은 1904년 경상남도 합천(陜川) 해인사(海印寺)에서 출가하고 1922년 4월 불교유신회(佛敎維新會)를 중심으로 전개된 사찰령(寺刹令) 폐지운동의 제1차건백서(第一次建白書) 제출 당시 15명의 주역 중 한 명으로 참여하였으며, 5월 조선불교청년회(朝鮮佛敎靑年會) 정기총회에서 상무간사(常務幹事)로 선출되었다. 그 뒤 1928년 12월 조선불교승려대회(朝鮮佛敎僧侶大會) 발기회에 참석하여 선거위원과 차기 대회의 준비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29년 1월 조선불교승려대회에서 의안심사위원(議案審査委員) 및 종헌제정위원(宗憲制定委員)으로 활동하고 그해 3월 조선불교중앙교무원(朝鮮佛敎中央敎務院)의 평의원회(平議員會)에서 평의원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1933년 7월부터 1936년 9월까지 해인사 8대 주지(住持)로 재직하였으며, 이후 해인사의 강원(講院)인 법보학원(法寶學院)의 강백(講伯)으로 지내면서 학승(學僧)들에게 불교 경전 이외에 민족혼(民族魂)을 일깨워 주기 위해 조선의 역사를 강의하였다. 1942년 12월 조선의 역사를 강의한 것을 빌미로 해인사 주지인 변설호(卞雪醐)가 밀고하여 해인사 법보학원 원장(院長)인 임환경(林幻鏡) 스님 등 모두 20여 명과 함께 합천경찰서에 체포되었으며, 취조 중 위독하여 일시 석방된 상태에서 치료하였으나 1943년 1월 21일 끝내 순국(殉國)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1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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