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共業
(1891-06)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공업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09년 음력 9월경 경기도 마전군(麻田郡)ㆍ연천군(漣川郡)에서 김시경의진(金時京義陣)에 참여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김시경은 일명 김병두(金秉斗)라고도 하며 연기우의진(延基羽義陣)에 들어가 1909년 8월에서 1910년 2월까지 14~15명의 의병을 이끌고 활동하였다. 연기우는 1907년 일제에 의해 군대가 강제 해산된 이후, 1908년 10월에서 1909년 10월 사이에 경기 지역에서 활발한 의병 활동을 펼쳤으며, 1909년 8월 이후 철원(鐵原)ㆍ연천 등지를 중심으로 활약하였다. 1909년 음력 9월경 김시경의 부하로 들어가 김시경 외 8명의 의병과 함께 경기도 마전군 북면(北面) 유림리(楡林里)에서 마을 주민들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연천군 북면 사동리(沙洞里)ㆍ횡산리(橫山里)에서도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었다. 1911년 4월 17일 경성지방재판소(京城地方裁判所)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3년을 받았다. 1912년 9월 13일 대사령에 의해 징역 2년으로 감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6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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