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敎寬
1890-04-29 ~ 1966-05-11·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교관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강원도 춘천군 사북면 오탄리 사람으로 1919년 3월 말 독립만세시위를 벌이려고 준비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민족대표의 독립선언 소식을 듣고, 자신의 마을에서도 독립만세시위를 계획한 이교관은 1919년 3월 31일 최기환(崔基桓)·김공모(金公模) 등과 4월 1일 석양을 기해서 독립만세시위를 벌일 것을 논의하였다. 그는 이 계획에 따라 마을 주민인 윤복균(尹復均)·윤철쇠(尹鐵釗) 등에게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하도록 독려하였다. 이러한 활동 중 체포된 이교관은 1919년 5월 6일 경성지방법원 춘천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고, 1919년 6월 26일 경성복심법원과 1919년 9월 4일 고등법원에서 상고 기각으로 형이 확정되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이교관은 1920년 징역 9월로 감형되어 1920년 6월 4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2008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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