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敎倫
1897-02-01 ~ 1978-11-02·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교륜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남 진주(晋州) 사람이다. 1919년 3월 22∼23일 이틀간 진주군 진주면(晋州面)에서 김영재(金榮在)와 함께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전개하기로 계획하였다. 이들은 「조선총대장 박(朴)모가 조선 13도를 조직하려고 하니 만민은 여기에 열복(悅服)하고 충절을 다하여 왜적에게 모멸당하지 말자」라는 내용의 조선독립완문서(朝鮮獨立完文書) 수 매를 작성하여 이를 진주읍내 법원지청 앞 등 여러 장소에 붙이고 각 리의 군중을 규합, 인솔하여 시위운동에 적극 참여하도록 권유, 촉구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그 해 4월 30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공소하여 5월 2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을 취소하고 징역 10월을 받자 다시 상고하였으나 6월 21일 고등법원에서 기각,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1993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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