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敎載
1887-07-09 ~ 1933-02-20·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교재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남 창원(昌原) 사람이다.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경남북 일대에 독립선언문을 배포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고, 상해로 망명하였다. 임시정부에 가담하여 군자금 모집 사명을 띠고 다시 입국하여 활동하였으며, 진주(晋州)에서 체포되어 3년간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임시정부와 연락을 취하던 보고서가 발각되어 3번째 수감되었으며, 부산감옥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고문의 여독으로 옥사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인정하여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1963
독립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