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球采
1869-03-29 ~ 1909-01-18·대한제국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구채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강원도 횡성(橫城) 출신으로 1896년 창의한 이인영(李麟榮)의 종사(從事)로 활동하였으며, 1907년 의병장 이인영이 지휘하는 관동창의진(關東倡義陣) 총독장(摠督將)으로 강원도 평창(平昌)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이인영은 1896년 유인석(柳麟錫)·이강년(李康秊) 등과 더불어 창의하여 강원도 일원에서 활약한 바 있었고, 1907년 9월에는 강원도 원주 등지에서 활약하고 있던 의병장 이은찬(李殷瓚)·이구채(李球采) 등의 추대로 관동창의대장(關東倡義大將)에 올랐다. 1907년 11월 각 도 의병부대를 경기도 양주(楊州)로 집결시켜 13도창의대진소(十三道倡義大陣所)를 결성하고, 군사장 허위(許蔿) 등과 더불어 서울진공작전을 전개하였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이구채는 1896년 창의한 이인영의 종사로 활동하였으며, 1907년 8월 대한제국의 군대 해산 이후 다시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동년 8월 12일 여주경무분파소(驪州警務分派所)를 습격하여 일본 경찰관을 처단하는 등 여주·지평 일원에서 활동했다. 또 동년 9월 9일 경북 상주 일원의 송면장(松面場)·화령장(化寧場) 등지에서 의병 약 800명을 거느리고 활동하다가 상주수비대와 교전하기도 하였다. 한편 이은찬과 함께 경기도 양주에 군사들을 집결시킨 뒤 이인영을 관동창의장으로 추대한 뒤 총독장으로 활동하였다. 1907년 11월 결성된 13도창의대진소(十三道倡義大陣所)가 1908년 1월 서울진공작전을 전개할 때 이구채는 이은찬과 더불어 그 모태가 되었다. 그 후 이구채는 이은찬과 함께 강원도 평창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7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07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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