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圭南
1898-12-27 ~ 1971-05-09·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규남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3월 24일 공주 영명학교(永明學校) 교사 김관회(金寬會)는 현석칠(玄錫七)·이규상(李圭尙) 등과 만나 4월 1일 공주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운동을 주도하기로 결의하였다. 이들은 김수철(金洙喆), 영명학교 학생인 노명우(盧明愚)·강윤(姜沇) 등을 동원하여 3월 31일 밤 영명학교 기숙사에서 윤봉균(尹鳳均)이 서울에서 가지고 온 독립선언서를 토대로 학교의 등사판을 이용하여 독립사상을 고취하는 내용의 문서 1천여 매를 작성·등사하였다. 3월 29일, 김수철로부터 만세시위 때 사용할 태극기 제작을 의뢰받은 이규남은 태극기 4매를 만들어 이 중 3매는 김수철에게 주고, 나머지 1매는 이규상에게 주어 만세시위 때 사용하게 하였다. 4월 1일 오후 2시경, 영명학교 교사와 졸업생·재학생을 중심으로 한 시위군중은 공주장터에 모여 그가 만든 태극기를 앞세우고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이날의 만세시위는 일제의 제지로 크게 확대되지는 못하였다. 이로 인해 이규남은 동지들과 함께 일경에 체포되어 5개월여의 옥고를 치르던 중 그 해 8월 29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4월, 집행유예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4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04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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