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根奭
(1888)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근석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만주에서 조직된 중흥단(中興團)에 소속되어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중흥단은 길림성(吉林省) 통화현(通化縣) 칠도구(七道溝)에서 백인균(白寅均)을 중심으로 설립된 항일 무장독립운동 단체로 칠도구에 본부를 두고 통화현 남부와 집안현(輯安縣) 노령(老嶺) 이남을 근거로 무장활동과 군자금 모집에 힘썼다. 주로 청장년들을 중심으로 동포의 단결과 군자금의 모집 등 효과적인 독립투쟁의 전개에 노력하고자 하였다. 이근석은 황해도(黃海道) 신천군(信川郡) 용문면(龍門面) 냉정리(冷井里) 출신이며, 신천군 가련면(加蓮面) 보월리(步月里)에 거주하였다. 1917년 음력 1월 초에 이태의(李泰儀)의 권유로 황해도 해주(海州)에서 이관구(李觀求)와 연계를 맺으며, 독립운동에 가담하였다. 1918년 1월부터 음(陰) 4월까지 해주 읍내(邑內) 등에서 군자금 모금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1919년 음 12월 경 통화현 8도구(道溝)에서 중흥단 참모로 활동하였으며, 1920년 음 4월 경 중흥단 해산 이후 황해도 신천(信川) 등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하다 1921년 1월 경 체포되었다. 이후 평양복심법원에서 소위 제령(制令) 제7호 위반 등의 혐으로 징역(懲役) 15년을 받았으며, 평양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0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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