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基淳
1909-10-02 ~ 1942-08-21·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기순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제주(濟州) 사람이다. 그는 1938년 남제주군 중문면사무소(中文面事務所) 서기로 재직하는 한편 천주교 신도 회장을 맡으며 아일랜드인 서(徐)신부와 함께 '일본패전'에 관한 시국담을 논하면서 항일의식을 고취하였다. 1937년 중일전쟁(中日戰爭) 이후 일제는 소위 전시체제 아래 대륙침략에 필요한 군수 자원을 국내에서 수탈하는 한편 민족적 탄압을 더욱 강화시켰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는 국제정세에 깊은 관심을 보이면서 일제의 패전을 예견하였다. 그리고 일제가 1941년 태평양전쟁을 도발하며 한국인에 대해서도 징병제도를 실시하게 되자, 그는 이러한 사실을 교인들에게 알리며 항일의식을 고취시키는 한편 일제가 강행한 소위 지원병제도(志願兵制度)에 대하여 반대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이 발각되면서 붙잡힌 그는 모진 고문을 당하다가 1942년 8월 21일 광주형무소에서 옥중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995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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