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技彦
미상 ~ 1922-03-26·조선
이명·자·호 李枝彦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기언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평북 창성(昌城) 사람이다. 대한독립청년단(大韓獨立靑年團) 출신으로 광복군사령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대한독립청년단은 1919년 4월에 중국 안동현(安東縣) 구시가(舊市街) 풍순전(豊順錢)에서 국내에서 활약하던 학생 조재건(趙在建)·함석은(咸錫殷)·오학수(吳學洙)·지중진(池中振)·박영우(朴永祐) 등이 만주로 피신하여 조직한 독립운동단체이다. 이 단체의 주요 간부를 보면 총재에 안병찬(安秉瓚), 단장 함석은, 서기 장자일(張子一), 간사 박영우 등이며, 주요 구성원은 20대 청년들이고, 근대적 교육기관에서 공부하였으며, 출신지는 대부분 평북지방이다. 대한독립청년단은 임시정부의 운동비 조달에 적극 참여하였으며, 『반도청년보(半島靑年報)』를 간행하여 임시정부의 입장을 널리 선전하였다. 이기언은 이 대한독립청년단원으로 1919년 3월이래 군자금 모집 등의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다가 1919년 11월 대한독립청년단이 대한청년단연합회(大韓靑年團聯合會)로 확대개편되었는데, 이 때 이기언도 이 단체에 가담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대한청년단연합회의 주요 간부로는 총재 안병찬, 부총재 김찬성(金燦星), 총무 차경신(車敬信)·김승만(金承萬), 재무부장 김시점(金時漸), 편집부장 함석은, 통신부장 오학수, 교육부장 최지화(崔志化), 교제부장 김두만(金斗萬), 부총재 겸 노동부장 박춘근(朴春根), 경호부장 여순근(呂淳根), 서기 오능조(吳能祚), 교육부장 이탁(李鐸)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이 대한청년단연합회는 1920년 민국독립단(民國獨立團)과 연합하여 광복군사령부(光復軍司令部)로 발전하였다. 이기언은 대한독립청년단 출신 광복군 사령부 요원으로 김병렬(金炳烈)과 함께 1922년 3월 26일 관전현(寬甸縣) 삼차자(三岔子)에서 평북 창성서(昌城署)의 정(鄭) 경부보(警部補) 이하 일경 8명과 교전하다 전사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1995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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