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基楚
(1884)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기초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평북 초산군(楚山郡) 성내(城內)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초산군의 만세시위는 3월 5일 천도교인과 예수교인이 상호 협력하여 1,000여 명이 함께 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전개한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때 천도교인은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기독교인은 독립 연설을 하였으며, 수십 명이 붙잡혔다. 19일에는 각 면에서 연락하여 면별로 일제히 만세를 부르고 시위를 벌였다. 31일에는 성내에서 천도교인을 중심으로 100여 명이 '조선독립회(朝鮮獨立會)'를 개최하고 만세를 부르며 군청을 향하여 시위 행진을 하던 중, 일본군의 출동으로 해산당하였다. 3월 31일 시위에 참여하였다 체포된 이기초는 1919년 7월 19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1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