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起憲
(1883)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기헌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강원 평창(平昌) 사람이다. 그는 1919년 10월 중순 이근세(李根世)·조두환(曺斗煥)·고제락(高濟洛) 등과 함께 대한독립애국단(大韓獨立愛國團) 평창군단(平昌郡團)의 통신원으로 선임되어 활동했다. 1919년 5월 서울에서 신현구(申鉉九) 등이 주도·결성한 대한독립애국단은 임시정부 지원단체로서 본부를 서울에 두고 강원도·충청도·전라도 등지에 도단(道團)을 설치하고, 다시 그 아래 군단(郡團)을 두었는데 평창군단은 동단의 강원도단 속칭 철원애국단(鐵原愛國團) 의 산하조직이었다. 이러한 동단의 활동은 주로 임시정부의 선전활동과 재정자금의 조달, 그리고 국내 조직망을 통한 임시정부 연통부(聯通府)와 같은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평창군단에서는 특히 자금모집 및 조직확대를 목적으로 창일계(昌一 )라는 위장조직을 구성하여 대중적 기반확보에 힘을 쏟았다. 그 결과 창일계에는 18명의 계원이 가입했고 발각시까지 2백 수십원의 자금이 거두어졌다. 이밖에 그는 김용준(金容俊)·김지용(金趾容) 등을 동지로 포섭하여 동단에 가입케 했다. 그런데 1920년 1월 강원도단의 조직이 발각됨으로써 그는 일경에 붙잡혀 징역 6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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