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大伯
(1879) ~ 미상·일제강점기
이명·자·호 李大白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대백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08년 음력 10월부터 1909년 11월까지 산남의진(山南義陣) 소속의 이석이의진(李石伊義陣)에 참여하여 경북 경주(慶州)ㆍ청송(靑松)ㆍ흥해(興海)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의병장 이석이는 1906년 3월 경북 영천(永川)에서 정용기(鄭鏞基)가 조직한 산남의진에 참여하였다. 1907년 9월 초 영일군(迎日郡) 죽장면(竹長面) 입암전투(立巖戰鬪)에서 대장 정용기가 전사한 뒤 독자적으로 의진을 편성하였다. 이석이의진은 1907년 9월 이후부터 1909년 10월 2일 청송군 현동면(縣東面) 도평(道坪)에서 체포될 때까지 청하(淸河)ㆍ영천(永川)ㆍ청송 등지에서 군자금 모집과 친일파 처단 등의 활동을 하였다. 이대백은 이석이의진에서 1908년 10월 14, 15일경 이석이 등 의병 백수십 명과 함께 총기를 휴대하고 청송군 원매동(元梅洞)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1909년 10월 24일 영천경찰서 순사대에 체포되었다. 1910년 1월 17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3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4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