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德生
1901-06-15 ~ 1939-12-03·일제강점기
이명·자·호 李相一, 李一普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덕생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북 대구(大邱) 사람이다. 1919년 4월 대구에서 동지를 규합하여 비밀결사 혜성단(慧星團)을 조직·활동하였다. 이어서 동년 8월 경남 거창(居昌)에 거주하는 신도출(愼道出)로부터 군자금 813원을 모집하여 만주군정서(滿洲軍政署)에 직접 전달하고 1920년 귀국후 〈신한별보(新韓別報)〉 수천부를 등사·배포하다가 일경에 붙잡혀 소위 제령 및 출판법 위반 혐의로 1921년 1월 8일 법원에서 송치되어 1년여의 옥고를 치렀다. 그는 1922년 출옥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김원봉(金元鳳)이 이끄는 의열단(義烈團)에 입단하여 중국 각처에서 항일활동을 계속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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