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德俊
생몰년 미상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덕준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기도 고양(高陽) 출신의 퇴역 군인으로 1908년 유충렬의진(柳忠烈義陣)의 영 솔관(領率官)으로 경기도 장단(長端)·마전(麻田) 일원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7년 8월 대한제국의 군대해산 이후 경기 서북부 고양·장단·마전 등지에 서도 의병항쟁은 불길처럼 일어났다. 특히 8월 9일 강화분견대에서 봉기한 해 산 군인의 일부가 일본군 토벌대를 피해 이 지역으로 진출하면서 의병부대의전투력은 한층 높아졌다. 대표적인 의병장은 정용대(鄭用大)·연기우(延基羽)· 박종환(朴宗煥) 등이 크고 작은 의병부대를 이끌고 대일항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 중 박종환은 장단군에서 일본군과 격전을 벌이다가 부상당한 뒤, 중군장 한 창렬(韓昌烈)이 스스로 의병장이 되어 최순좌(崔順佐)·이춘흥(李春興)·유충렬 (柳忠烈)·이명준(李明俊)·전복규(田福奎)·최춘식(崔春植)·이용현(李容鉉)·권 중삼(權重三) 등을 휘하에 거느리고 활동하였다. 이덕준은 한창렬의진에 합세하여 활동했던 유충렬의진의 영솔관(領率官)으로 장단·마전 일원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이덕준은 소위 내란죄(內亂罪)로 기소되어 1908년 9월 4일 경성공소원에서 유 형 10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3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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