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東下
1856-10-04 ~ 1919-06-03·조선
이명·자·호 李淨來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동하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북 문경(聞慶) 사람이다. 1907년 9월 7일 이강년(李康秊) 의진의 참모로 임명되어 좌익장(左翼將) 김영식(金永軾)과 같이 정병(精兵) 20여명으로 이화령(梨花嶺)을 파수하고 각 전투에 참전하였다. 1908년 의병장 이강년 의진(義陣)의 참모장으로 경북·충북·강원도의 각지에서 활동하다가 1908년 6월 4일 이강년 의병장이 까치성에서 부상당하여 붙잡히자 당시 강원도 영월군(寧越郡)에 있다가 의병활동을 계속할 수 없어 동지 권병을(權秉乙)·조용필(趙鎔弼)·김성수(金聖愁)와 함께 동삼성(東三省) 간도(間島)로 망명하였다. 1914년 9월 동삼성으로부터 귀국한 후 국권회복을 위하여 옛날 의병동지인 이인영(李麟榮) 의병대장의 아우인 이은영(李殷榮)과 국권이 일제에 침탈되자 단식하여 순국한 김제흠(金濟欽)의 아들 김낙문(金洛文)·이강년 의병진의 군자장(軍資將)이던 최욱영(崔旭永)·이강년 의병장의 조카 이제재(李提宰)등을 규합하여 1915년 「민단조합(民團組合)」을 비밀리에 조직하고 충남(忠南)지역의 민단조합 지점장이 되어 격문을 배부하며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15년 4월 경남(慶南) 하동면(河東面) 용전리(龍田里)의 김병두(金炳斗)와 병천리( 川里)의 박종식(朴宗湜) 및 충남(忠南) 영동군(永同郡) 황간면(黃澗面) 금계리(金溪里)에 거주하는 이종면(李鍾冕)을 비밀결사인 조선독립의군부(朝鮮獨立義軍府)에 동참하도록 하고 박종식이 군자금 250원을 가지고 충남 성환(成歡)역에서 일경에게 붙잡히자 피신하였다가 1916년 8월에 발각되었다. 이로인해 1918년 5월 30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1919년 6월 3일 청주 감옥에서 일경의 모진 고문으로 의식불명의 상태에 이르자 가족에게 연락되어 고향으로 옮기던 중 소구리재라는 곳에서 운명하자 현자연(現自然) 부락의 앞산에 안장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6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1990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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