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冕植
(1882)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면식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황해도 옹진군(甕津郡)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0일 정오 이면식은 안경구(安敬九),최양항(崔養恒) 등 천도교인 수백 명과 함께 '조선독립만세'라고 쓴 큰 기를 앞세우고 해주 읍내로 진입하며 만세시위를 감행하였다. 읍내에 이르자, 기독교인 수백 명과 읍내 주민들이 합세하여 시위 대열은 해주읍 큰 거리를 덮었다. 일본 헌병과 기마 헌병은 10여 명의 주동 인물을 체포하고 시위대열을 해산시키자, 이번에는 남문 밖에서 300여 명의 시위대가 몰려왔다. 다시 30여 명을 체포하여 해산시키자, 또 동문 밖에서 300여 명의 시위대가 밀려 들어왔다. 결국 일본 군경은 폭력을 행사하며 시위군중 70여 명을 체포하여 저녁 무렵 겨우 시위가 진정되었다. 이 시위 후 체포된 이면식은 1919년 7월 3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2011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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