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明魯
(1877)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명노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황해도 장연군(長淵郡) 후남면(候南面) 남호리(南湖里)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장연군에서는 1919년 3월 11일 읍내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시작되었고, 4월 상순에는 속달면(速達面) 태탄리(苔灘里)와 후남면 남호리에서 만세운동이 크게 일어났다. 4월 5일 정오부터 오후 2시까지 태탄리 장터와 큰 거리에서 약 1,000명의 군중이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만세의 물결은 이웃 마을로 퍼져갔다. 남호리에서는 4월 8일 밤에 불을 피워 올려 만세운동의 시작을 알렸고, 11일 남호(南湖) 시장의 장날에 기독교인을 중심으로 한 200여명의 군중이 오전 11시부터 장터와 면사무소 등지에서 태극기를 앞세우고,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명노는 경술국치 후 독립을 염원해 오다 민족대표의 독립선언 소식을 듣고, “민족자결주의의 대세에 따라 조선독립만세를 부름은 실로 조선 민족된 사람의 도리”라고 생각하고 4월 11일 남호시장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시위 후 체포된 이명노는 1919년 7월 26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았고, 1919년 10월 2일 고등법원에서 상고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7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07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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