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夢石
1898-05-11 ~ (1929-09-09)·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몽석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3월 경남 동래군(東萊郡) 구포면(龜浦面) 구포시장(龜浦市場)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경성의학전문학교에 다니던 양봉근(楊奉根)에게 각지의 독립만세운동 소식을 들은 임봉래(林鳳來)는 3월 27, 28일 구포리 박영초(朴永初)ㆍ이수연(李守連)의 집에 모여, 3월 29일 구포 장날에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하였다. 이들은 수백 장의 독립선언서와 태극기,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큰 현수막을 만들었다. 3월 29일 장날 이몽석은 이들이 나누어 준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들고, 박덕홍(朴德弘) 등 마을 청년들과 함께 구포시장으로 향했다. 정오 무렵이 되자 구포시장에 1,000여 명이 모였고, 이몽석은 이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19년 8월 26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4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14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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